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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한 사진을 봤다. 내용은 어떤 할머니께서 매실 10kg짜리 다섯 박스를 공판장에 팔았는데 수령한 금액이 만 원, 정확히는 수수료 9700원을 떼고 '300원'이었다. 매실 50kg 팔고 받은 돈이 고작 300원이라니, 농업에 대한 대우가 어느 수준인지 잘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었다.(이 사진은 2014년 6월에 SNS 상에 처음 올라와서 이미 한 차례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이경해와 백남기, 반역의 평행이론  

 

이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12년의 시간 차를 두고 일어난 두 개의 사건이 생각났다. 먼저, 2003년 추석 즈음, 한 농민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경해, 농수산물 시장 개방 내용을 포함하는 WTO 각료회의가 열리는 멕시코 칸쿤에서 그는 WTO 반대를 외치며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라는 칠순의 농민이 최루액이 섞인 초고압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지만 백 일이 넘게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다. 그가 외쳤던 것은 쌀 시장 개방, 정확히는 밥쌀 시장의 개방을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둘은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다.

 

 

농민 백남기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 (뉴스타파)

 

그저 농사를 지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걱정 안 하고 농사를 지어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는 것이 그들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되게 한 원인이었다. 농업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이 뻔한 국가와 정부 앞에서 그 소망은 반역이었던 것일까? 아마 그런 것 같다. 12년을 사이에 둔, '반역의 평행이론'인 것이다.

밥쌀 시장 개방, 식량주권이 무너지고 있다

 

2014 년 기준 국내 식량자급률은 49.8%, 곡물자급률은 24.0% 수준이다. 몇 년 전보다 조금 나아진 거라고들 하지만 사실 별반 다르지 않거니와, 정부가 목표치로 잡은 식량자급률 57%, 곡물자급률 30%에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환산하자면 곡물 2천만 톤 중 423만 톤만이 국내 생산이고, 2/3인 1천 5백만 톤 이상을 수입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급률이 그나마 80%대를 상회하는 쌀을 뺀 곡물자급률은 기껏해야 5% 수준이라는 것이다. 밀과 옥수수는 자급률이 1%도 안 되고 콩도 11% 선인데, 이건 가히 '식량 재앙'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그나마 자급률이 높다는 쌀도 자급률이 높은 것은 아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쌀의 자급률은 120%대, 못해도 100%대를 상회했는데, 지금은 WTO와 FTA등의 지속적인 농업시장 개방의 영향으로 자급률이 점점 떨어졌고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 그 꿈은 누구의 꿈이었을까. (사진: 동아일보)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시절, 17만 원이던 쌀값(80kg 기준)을 21만 원대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지금 쌀값이 오르기는커녕, '최후의 보루' 인 밥쌀 시장마저 개방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또 정부가 쌀을 수매하지 않으니 농민들은 공판장에 현재 평균 시가인 약 17만3천 원에 쌀을 판매할 수밖에 없고, 헐값에 쌀을 넘기다 보니 식량주권 이전에 농민의 생존도 위협받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수입쌀은 막걸리용, 산업용 등으로 수입되고 있다.

 

대부분이 한-미 FTA 등을 통해 수입된 미국산 쌀이고, 한-중 FTA를 통해 중국산 쌀도 대규모로 수입될 전망이라 한다. 이런 대규모 수입쌀이 밥쌀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된다면 쌀 자급률 또한 잠식당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나마 가장 높은 쌀 자급률이 무너진다면, 농민의 생존과 식량주권 모두 우리의 손을 떠나게 될 것이다.

농업으로부터 시작되는 착취의 정치학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많은 제 3세계 국가들은 대부분 저성장과 저발전에 시달리고 있다. 그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이루기 어려운 이유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에 의해 농·수·축·산업을 포함한 기반산업부터 잠식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경제지표가 높지 않더라도 식량의 자급률이 높고, 그러한 기반을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하던 제 3세계 국가들이, 강대국에 의해 예속되는 과정을 겪는다. 다국적기업이 진출하고 식량 자급률이 점차 하락하며, 농업 등 기반산업이 파괴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국가들의 식량 주권과 경제는 강대국과 다국적기업에 예속될 수밖에 없으며, 빈부격차와 착취 또한 증가하게 된다(그리고 그 과정에선 대개 민주주의 정부가 군사 쿠데타 등에 의해 전복되고 독재체제가 등장하곤 한다).

 

한국이 아무리 경제대국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위의 사례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사실 한국의 농·축산업, 특히 농업은 이미 다국적 기업과 세계화에 잠식당하다시피 한 상황이다. 정부마저 국내의 농업 생산자들을 내팽개치고 수입에만 열을 올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식량, 특히 주식이라 할 수 있는 곡물의 가격은 점점 떨어지고 있고, 그 때문에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적자" 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과 "논밭을 팔고 상품작물을 재배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오게 된 것이다.

쉬운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식량주권'이라는 것은 실재한다. '수입 쌀 좀 먹으면 어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 이미 충분한 양의 쌀이 생산되는 판국에 계속 필요 이상의 수입 쌀을 수입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무엇보다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주권을 팔아버린다는 -국가주의적으로 들리기 좋은- 말을 쓰지 않더라도, 식량 자급률이 무너지고 밥쌀 시장 또한 잠식당한다면, 언제 우리 목에 칼이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다. 이미 개방 반대와 생존권 쟁취를 위해 싸우던 이경해는 불귀의 객이 되었고 백남기는 생사의 기로 가운데에 홀로 서 있다.

이미 이 혼란의 탁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개중에는 노동자도 있었고 학생도 있었고, 성소수자도, 장애인도 있었다. 또 '삼천만 잠들었을 때' 깨어 있던, 농민도 있었다. 쉬운 해고와 프라임 사업, 그리고 이야기한 밥쌀 시장 개방 등으로 인해 바야흐로 '쉬운 죽음'의 시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죽음이라는 직설적인 이름을 하지 않은 죽음들이, 점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링크)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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