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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창 트위터는 개인후원 논란으로 시끄럽다. 발단은 다음과 같다. 어떤 트위터 유저가 자신의 계정을 통하여 개인 후원을 요청했다. 생활이 무척 어렵다는 이유였다. 조금씩 리트윗이 이뤄지며 트윗이 퍼졌고, 그의 계좌로 후원 성격의 돈이 어느 정도 입금되었다. 문제는 그 중 '자유롭게 사용하라'는 동시에 '사용 내역을 밝혀달라'는 후원금으로 자위기구(딜도)를 구매하고 게임을 했다는 사용 내역을 공개적으로 올리면서 부터였다. 생활에 보탬이 되라고 보낸 돈이지 성인용품을 사거나 게임을 하라고 보낸 게 아니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동시에 누군가는 '후원금을 부정하게 사용했다'며 그가 거주하는 지역 주민센터에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을 취소하라는 민원을 올린 모양이다.

 

이번 논란이 한국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성질의 사건이긴 하다. 누군가는 당장 빈곤한데 성인용품 따위를 구매해 성적 쾌감을 느낄 수가 있냐고 비아냥거리고, 여기에 당사자도 '뻔뻔하게'(아니, '당당하게') 대응을 하고 맞서면서 논란이 커진 측면도 없진 않다. 하기사 대체 누가 가난한 사람이 자위 용품 따위를 산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너무나도 당연히 '가난한 사람이 대체 왜 그런 것에 돈을 쓰냐'는 말이 횡횡하는 가운데, 나는 질문을 감히 대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대체 '가난하고 빈곤한 사람들'은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아가냐면 되나?

 

 

'누더기'를 입지 않아도 빈곤은 빈곤이다

 

잠시 시간을 돌려 이랑의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퍼포먼스 논란으로 돌아가보자. 이랑의 2집 앨범 <신의 놀이>가 2017년 초에 열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 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랑은 트로피를 받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생활비가 없어 트로피를 팔아야겠다며 방금 전 받은 트로피를 현금 50만원에 파는 퍼포먼스를 행했다. 정말로 '금수저'가 아닌 이상 50만원을 현금으로 들고 다니는 사람도 없고, 이랑 역시 트로피 판매가 실제로 판 것이 아니라 미리 사전에 기획사 사장과 같이 짜고 의도한 '퍼포먼스'라 밝혔다. 그러나 한국대중음악상의 일부 심사위원을 비롯한 몇몇 이들의 심기를 자극해 한동안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대중음악상의 김창남 선정위원장은 이랑의 퍼포먼스는 존중하지만, 앞으로도 한국대중음악상에는 상금이 없을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곁가지로 터진 논란이 잠시 있었다. 경향신문에 절찬리에 연재 중인 박순찬의 4컷 만평 <장도리>에서 이 퍼포먼스를 다뤘는데, 이랑의 모습을 '누더기'를 입고 거리에서 구걸하는 모습으로 그렸던 것이다. 또한 여기에 이랑이 시상식에서 퍼포먼스의 문제를 '음원 유통사 착취'로 제한되어 서술한 것이 구설수에 올랐다. 물론 <장도리>의 이러한 선택은 이해할 여지가 있긴 하다. 4컷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표현을 해야하는 '4컷 만화'의 한계에서 <장도리>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 여기에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사라져도 여전히 문화계 내부의 불합리가 존재함을 말하기 위해 사건을 끼워 맞추고, 대다수 문화예술인의 빈곤함을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드러내기 위해서 '누더기'라는 기호적인 표현을 쓸 수 밖엔 없었으리라. 어떤 의미로는 여전히 한국 사회는 '가난'을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할 정도로 파탄에 빠진 삶으로 생각하는 것을 <장도리>는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가난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최신 제품은 아니지만 컴퓨터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고, 아울렛이나 구제 옷가게, 인터넷 쇼핑을 통해서 패션 용품도 제법 갖출 수도 있다. 취미 생활을 즐기기는 쉽지 않지만 인터넷의 발달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그리고 통신비만 감당할 수 있다면 사실상 무료에 가깝게 취미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윤서인이 '가난을 이해 못하겠다'며 올린 만화에서 밝혔듯,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음식도 꽤 있다. 이제 갖출 것은 다 갖췄으니, 이제 더 이상 한국에 빈곤한 사람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떤 의미로는 한국인들의 삶이 상향 평준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기본적인 요건만 겨우 갖출 뿐 그 이상으로 나갈 수가 없다. 당장 거주하는 집의 월세나 보증금이 오른다면, 갑자기 집주인의 마음이 바뀌어 곧 집에서 나갈 준비를 하라고 통보하면 비상이 걸린다. 취미를 어떻게든 즐기지만, 깊이 있게 즐길 여유를 가지기 어렵다. 밥은 어떻게든 싸게 먹지만, 건강은 물론 자신의 미각을 다지기 어렵고 '자극적'인 요리만 횡횡한다. 유튜브나 <마이 리틀 텔레비전>으로 '값싼 가격으로 그럴듯한 요리를 만드는 컨텐츠'가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편의점에서 파는 음식으로 '고급 레스토랑'을 재현하려는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 심지어는 '편의점 포차' 같이 편의점 컨셉으로 매장을 꾸며 스스로 안주를 만들어 먹는 술집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 현대 사회의 가난과 빈곤은 '사회적'인 가난이자 빈곤이다. 그저 '사는 것'일 뿐이다.

 

나는 개인 후원금으로 딜도를 산 사람이 빈곤에 시달리는 와중에 어떤 성적인 문제를 겪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돈으로 '딜도'를 사고서 '뻔뻔하게' 말하며 대드는게 문제라고 본다면, 그렇게 보는 시각 근간에는 여전히 '가난'을 물질적인 가난으로만 보는 관념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개인 후원을 요청하는 글을 SNS에 올릴 정도로 '뻔뻔할' 수 밖에 없게 된 한국 사회와 복지의 문제가 더 급선무이긴 하다. 어떤 의미로는 우리는 복지를 축소하는 정치인을 욕하고, 윤서인을 비난해왔지만 기실 그들과 큰 차이 없는 수준으로 복지와 빈곤을 바라보는 이들이 더 널려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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