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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이름은.>, <두더지>, <신 고질라>, <희망의 나라>, <이누야시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2017년 새해 벽두 한국 극장가를 장식했다. <별의 목소리>나 <초속 7센티미터> 등 독립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진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2016년 신작 <너의 이름은.>이 일본과 중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것은 물론, 3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초유의 흥행 기록을 남긴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 문화 개방이 이뤄진 이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2004년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기록한 일본 영화 최고 흥행을 약 14년 만에 갱신하는 순간이었다.

파죽지세의 흥행을 보여준 영화인만큼, 영화를 놓고 벌어지는 각종 논의도 활발했다. <언어의 정원>을 비롯한 전작들에서 관찰된 신카이 마코토의 섬세한 감각을 칭찬하는 평가도 있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관찰되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 표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혹평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쉽게 부인할 수 없는 평이 하나 있었다. <너의 이름은.>의 스토리는 3.11 동일본 대지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었다.



지진으로 파인 깊은 골, 작품들에도 깊게 파이다

확실히 <너의 이름은.>의 중후반부 전개는 일본이 2011년 3월 11일 벽두에 갑작스럽게 겪어야 했던 동일본 대지진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재현되는 느낌을 들게 한다. 단지 재해의 유형이 쓰나미가 동반된 대지진에서 혜성 추락으로, 재해를 겪은 지역이 동일본 전역에서 호수를 낀 작은 시골 마을로 바뀌었을 뿐이다. 일본 에도 시기 ‘우키요에’(浮世繪, 일본의 전통 민화)를 통해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자주 그려진 파도가 지진과 함께 동일본을 덮치며 막대한 피해를 남겼듯, <너의 이름은.> 속 쌍둥이 혜성 ‘티아마트’는 무척이나 경이로운 존재로 그려지다 지구에 도달하는 순간 마을 하나를 소멸시키는 폭력적인 존재로 변한다. 단순히 남녀 주인공의 영혼이 바뀌는 로맨틱 코미디로 보였던 <너의 이름은.>은 혜성의 또 다른 이면이 밝혀지는 순간, 여전히 일본에 깊게 남겨진 상흔을 비추는 작품이 되었다.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을 받은 작품은 <너의 이름은.>에 그치지 않는다. 또한 대지진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이전의 지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계속 등장하고 있다. 예전부터 일본은 수많은 지진과 화산 폭발, 쓰나미로 시달려온 국가였지만 동일본 대지진이 남긴 파장은 이전의 지진들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었다. 막대한 피해를 입어도 언젠가는 재건할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다른 지진들과 달리, 동일본 대지진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심각한 충격을 입히며 후쿠시마 일대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땅으로 만들고 말았다. 결코 지진 이전의 사회로는 돌아갈 수 없는 파멸적인 결과였다.





도저히 상식적인 수준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버텨내지 못하고 분노를 쏟아내고 만다. 대지진이 발생하고 약 일 년이 지난 2012년에 개봉한 소노 시온의 영화 <두더지>가 대표적이다. 후루야 미노루가 그린 동명의 만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원작에 없던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요소를 삽입한다. 세상의 어둠 속에 숨어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한 ‘인간 쓰레기’를 죽이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은 소년의 이야기라는 중심 전개는 같지만, 원작에서는 세부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던 행동의 근원이 영화에서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직접적으로 암시된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비록 극단적인 방식이지만 삶의 탈출구를 찾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영화는 원작보다는 희망적인 귀결을 맞이한다.

한국에서도 최근 개봉한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로 유명한 안노 히데아키와 <일본침몰>(2006)을 감독한 히구치 신지가 공동으로 연출에 참여한 <신 고질라>는 재해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들과 그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을 정면으로 담아낸다. 이전에는 단순히 어린이 관객들을 위한 특촬 영화의 메인 캐릭터에 지나지 않았던 괴수 ‘고질라’는 더 이상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의 상징으로 재탄생했다. 영화는 대다수의 괴수물과 달리 괴수에 맞설 대책을 논의하는 관료들의 모습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이러한 연출은 작품의 현실성을 강조하는 한편 대지진 앞에서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도 못하고 실수를 연발했던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기제가 된다.

딱히 사회파적인 경향과 크게 가깝지 않았던 작품이 대지진과 함께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잠시나마 소재를 삼은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도토리의 집>으로 유명한 만화가 야마모토 오사무의 자전적인 만화 <오늘도 좋은 날씨>(今日もいい天気)가 바로 그러한 작품이다. 일본 공산당이 발간하는 기관지 <아카하타>(赤旗, 적기)에 연재된 작품은 2008년에 연재했던 1부 '시골생활편'이 도시 생활을 마치고 새롭게 전원 생활을 시작한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반면, 2012년에 연재한 2부 '원전사고편'은 부제 그대로 자신이 이주한 전원 마을 주변에서 벌어진 원전사고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여유 있고 위트가 간간히 들어간 1부와 달리, 2부의 상황은 무척이나 심각하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하고 상쾌한 시골 마을로 애써 들어갔지만, 하필 그 마을이 후쿠시마에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름다워 보였던 제2의 고향은 재해 이후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죽음의 동네가 되었다. 조금만 가족이 아파해도 곧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피해처럼 느껴지고, 도쿄전력은 물론 정부 또한 믿음직스럽지 않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음식 만화 <맛의 달인> 또한 후쿠시마 지역을 2014년 연재한 에피소드의 무대로 다루며 후쿠시마 원전의 피폭 문제를 화두로 삼기도 했었다.



<도토리의 집>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야마모토 오사무의 자전적인 만화 <오늘도 좋은 날씨> 2부 '원전사고편' 단행본의 표지.




절망 속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발굴하려는 노력

하지만 이들 작품을 제외하면 대지진의 영향을 받은 다수의 작품들은 재해로 입은 절망을 강조하는 대신, 절망을 인정하며 그 속에서 어떻게든 다시 재건할 수 있기를 기대하거나 절망 자체를 우회하는 형식으로 희망을 발굴하려 애쓰고 있다. <두더지>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으로 삶이 파괴된 일본 사회의 우울한 모습을 그렸던 소노 시온은 다시 1년 만에 <희망의 나라>(希望の国)를 통해 전혀 다른 방향성으로 동일본 대지진을 바라보기를 시도했다.

지진과 원전 사고로 인해 모두 마을을 떠난 상황에서 오랜 시간 동안 그 곳에 살던 노부부는 자식들만 새로운 터전으로 보내고서 계속되는 퇴거 요구에도 꿋꿋이 마을을 지키다 죽음을 통해 그 마을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을 선언한다. <두더지>에서도 죽음의 묘사가 그려졌고 두 작품 모두 우울함으로 가득한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두더지>가 무너진 사회 자체를 뒤집으며 그 속에서 약간이라도 희망을 찾고자 했다면, <희망의 나라>는 재해 자체를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이는 결말을 택하며 희망을 말하는 차이를 보인다.

<희망의 나라>가 직접적으로 대지진과 원전 사고의 현장을 제시하면서 희망을 말했던 것에 비해, 야마다 요지의 <동경가족>은 대지진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으나 침체된 일본 사회와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나가며 희망을 모색한다. <동경가족>의 원작격인 작품인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가 2차 세계 대전과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패배로 끝난 뒤 사회 전반에 만연하던 무력감을 포착했다면, 그로부터 약 60년이 지나 제작된 <동경 이야기> 역시 가라앉은 사회의 모습을 가족의 이야기로 담아낸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을 중심에 놓으며 가족을 희망으로 생각한 <동경 이야기>와 달리 <동경가족>은 가족을 넘어 젊은 세대로 하여금 희망의 주춧돌로 삼는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처럼 재해 자체를 극복하는 것을 통해 희망을 찾으려는 작품도 눈에 띈다. 최근 한일 양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호리코시 코헤이의 만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나 <간츠>로 유명한 오쿠 히로야의 신작 만화 <이누야시키>가 대표적이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소년 점프>에서 연재 중인 정통적인 형태의 소년 만화지만, 동시에 미국 히어로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이다.


평범한 소년이 영웅을 동경하고, 시련을 돌파하며 한걸음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흔해빠진 이야기가 되었지만,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주인공과 동료의 협력으로 난관을 해결하는 모습을 비추며 한 사람의 힘만이 아니라 모두의 노력을 강조한다. 마치 파괴된 후쿠시마를 복구하기 위해 달려든 사람들의 모습처럼, 어떠한 시련일지라도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다함께 힘을 내면 해결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와 달리 <이누야시키>는 히어로물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란 점에서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와 비슷하지만 다른 방향으로써 재해 극복을 시도한다. 우주선이 착륙한 후폭풍으로 인해 사망한 두 주인공을 외계인이 사이보그로 개조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은 갑작스레 막대한 힘을 얻은 주인공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시한부 운명을 선고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노년의 주인공 이누야시키가 자신에게 주어진 힘으로 모두를 구하려 애쓰는 것에 비해, 고등학생인 주인공 시시가미는 이누야사키와 정반대로 자신에게 거슬리는 모두를 없애기에 바쁘다. 작품은 주인공 두 명을 대비하며 혼란스럽고 침체된 세상을 구할 영웅은 젊은이가 아니라 노인들에게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어떤 의미로는 <두더지>나 <동경가족>에서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걸었던 것을 역으로 뒤집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재해는 있지만, 그 이상의 고민은 어디에?

이렇듯 재해가 발생한 후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2017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대지진을 다루거나 영향을 받은 작품이 계속 나오는 것은,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이 그만큼 막대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세월이 흘러도 결코 이 재해를 잊을 수 없겠다는 의지의 표상이기도 하다.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각종 재해가 많았지만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다룬 <삼풍> 같은 작품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사고를 그저 흘려버리지 않는 일본의 모습은 분명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일본이 3.11을 지속적으로 작품의 형태로 다루는 것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동일본 대지진을 다룬 작품들이 재해를 깊게 고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는 단순히 재해의 심각함을 드러내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재해가 발생한 일본 사회의 구조적인 요인과 재해 이후 대지진이 인재와 결합하며 더욱 피해가 확산된 것을 고민하는 대신 오히려 ‘먹어서 응원하자!’과 같은 캠페인처럼 빠른 재건만을 강조하고 이러한 와중에서도 계속 인기가 급상승 중인 2기 아베 내각의 모순은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이 남긴 여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다수의 작품들은 재해 그 자체만을 강조하는 것에서 머무른다. 아니면 <너의 이름은.>처럼 재해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거나, <이누야시키>처럼 우리들을 구해줄 영웅을 원할 뿐이다. <동경가족>처럼 계속 끊임없이 희망을 말하지만, 정작 사건에 대한 심층적 접근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희망만이 강조되는 모습은 어떤 의미로는 사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행위를 피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나마 <오늘도 좋은 날씨>가 작품이 연재된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의 기자와 함께 원전 문제를 취재하려는 시도를 하고 <신 고질라>가 일본 관료제의 병폐를 신랄하게 지적하긴 했다. 그러나 전자의 시도는 작품 연재 종료를 곧 앞둔 상태에서 진행되어 깊이있는 취재가 쉽지 않았으며, 후자의 시도는 관료제의 문제만을 말할 뿐 다른 지점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빈약함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신 고질라>의 결말 또한 소수의 영웅들이 펼친 노력으로 마무리됨을 생각하면, 오히려 <신 고질라>는 2기 아베 내각과 같이 카리스마로 무장한 ‘효율적인’ 정부를 원한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동일본 대지진과 비슷하게 천재지변과 인재가 결합된 참사였던 2005년 미국 남부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해서 영화 <비스트>나 만화 <저항하라>와 같이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빈부격차와 유색인종 차별 문제를 지적하는 작품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에서 대지진을 이야기하는 상당수가 피상적인 접근 이상으로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과 비슷하게 세월호 참사로 인한 상흔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에 많은 숙제를 던진다.

물론 한국은 일본에 비하면 좀 더 강도 높은 형식으로 세월호 참사에 접근하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나쁜 나라>와 같이 세월호 대책위원회에 결합한 수많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을 매년 발표하고 있고, 소설가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나 MBC의 드라마 <앵그리맘>처럼 세월호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는 작품들도 계속 등장하는 중이다.

그러나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되어 화제가 된 <다이빙벨>이나 <세월X> 같은 작품이 음모론에 천착해서 세월호가 침몰한 배경에 있는 한국 해양선박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오히려 가리는 우를 저지르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세월호 사건에 모티브를 얻은 작품 다수는 정부에 대한 분노만을 양산하는 지점에서 끝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떤 의미로는 한국의 작품들이 세월호를 바라보는 방식은 일본이 3.11을 바라보는 방식의 거울쌍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한일 양국이 각각 자국에서 발생한 참사를 바라보는 모습들은 반성 없는 낙관도, 하염 없는 분노도 아닌 절제되면서도 깊숙한 접근을 고민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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