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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주님께서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떤 성읍에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부유하였고, 한 사람은 가난하였습니다. 그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다가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어린 양을 자기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양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어린 양은 주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주인의 잔에 있는 것을 함께 마시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함께 잤습니다. 이렇게 그 양은 주인의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 데, 자기의 양 떼나 소 떼에서는 한 마리도 잡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다가,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다윗은 그 부자가 못마땅하여, 몹시 분개하면서, 나단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서 맹세하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또 그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그는 마땅히 그 어린 암양을 네 배로 갚아 주어야 합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사무엘하 12장 1-7절
의도하지 않게 거울이 다가왔다
2015년 여름이 다가올 즈음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 국내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국 인터넷 문화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디시인사이드에선 여느 이슈와 다름없이 해당 갤러리를 생성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 갤러리가 처음 생겼을 때 메르스 의심환자인지 모르고 홍콩에 갔다 왔다고 알려진 두 명의 여성을 비난하는 글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분개한 여성 이용자들은 최초 감염자가 남성 노인이며, 감염자 중년남성이 격리수용 권고를 무시하고 해외출장을 나갔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남성에 대한 공격적 발언을 하기 시작했고 이런 흐름 가운데 크게 등장한 문학 양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범람하는 여성혐오적인 문구의 성별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것을 ‘미러링’이라고 불렀다.
애초에 메르스 갤러리(이하 메갤)에 모인 여성 이용자들이 여성인권이라는 대의를 가지고 모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러링을 통해 사회 속에 거울을 세웠고, 지금까지 뭔가 잘못되어있었음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이게 된 자리(메갤)와 성 역할이 바뀐 세상을 그림으로 남성중심적 세계를 비판하는 작품(이갈리아의 딸들)의 이름을 합친 메갈리안으로 자신을 정체화 했다. 그들은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 ‘불편함’으로 명명되던 것에 ‘여성혐오(Misogyny)’[각주:2]라는 이름이 있음을 상기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느껴오던 여성혐오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인터넷이라는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2015년 인터넷 서점 알라딘 여성학 분야의 도서판매는 2010년에 견줘 2.5배 증가했다. 교보문고에서도 여성학 분야 도서 판매량이 전년에 견줘 48% 넘게 늘었다. 예스24에서도 2014년 주춤했던 여성/페미니즘 카테고리의 2015년 도서 판매량이 전년도에 견줘 9% 정도 많았다. 분류가 달라 이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않는 책들을 포함하면 수치는 더 늘어난다.[각주:3]
거울을 공격한다
미러링은 상대방의 논리나 담론을 거울을 통해 보듯 그대로 돌려주는 작전이다. 성경에도 유명하고 유서 깊은 미러링이 하나 나온다. 우리야가 죽은 뒤 다윗을 찾은 선지자 나단의 이야기이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 못된 부자의 이야기를 한다. 다윗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고 이야기하며 배상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단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 뒤의 이야기에 대해서 놀랍게도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고 그에 따른 벌을 받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인터넷 유행어 중 하나로 ‘일본을 공격한다’가 있다. 원래 일본의 한 방송국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미국이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북한을 침공할 경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라는 앙케이트를 한 것이었는데, 무응답이 20%가량 나왔다. 그런데 일본 넷 우익들이 혐한 선동을 위해서 무응답을 ‘일본을 공격한다(日本を攻撃)’라는 엽기적인 대답으로 합성하면서 이때부터 이지선다에 대한 엉뚱한 대답으로 일본을 공격한다는 인터넷 유행어가 퍼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거울과 그 거울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는 메갈리안이 남성혐오를 하고 있다며, 미러링에 대한 미러링을 보여주겠다며 평소에 하던 여성 혐오적 태도를 나름대로 –하나도 웃기지 않지만 – 익살스레 보이기도 했고, 그들 중 일부는 진정한 페미니즘은 그런 것이 아니라며 훈수를 두기도 했다. 물론 그들은 매우 높은 확률로 남성이었다. 이것을 일본을 공격한다 양식에 맞춰 표현해보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여성혐오에 대한 고발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3) 거울을 공격한다.
보기 1) 여성혐오란 없다. 2) 함께 여성혐오에 맞서겠다.
사실 나 역시 여성혐오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이기에 여성혐오에 대한 고발을 볼 때마다 제 발 저린 도둑의 감정이 들어 ‘내가 감히 저것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듣기나 잘 해야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거울을 공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일본을 공격한다가 혐한이라는 실체가 없는 무언가를 만들려는 노력이듯 거울을 공격하는 것 역시 남혐이라는 실체가 없는 무언가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거울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은 거울 뒤의 사람과 그들의 세계를 상상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잘 구축해놓은 거울 안의 세계가 이미 충분히 편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울 안의 세상은 반쪽의 실제이고 나머지 반은 환상으로 채워진 세계이다. 그리고 거울 뒤에선 이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네 눈앞에 있는 것은 거울이라고 말하고 있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 : GIRLS Do Not Need A SAVIOR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또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기 때문에 대부분 뮤지컬 형식을 취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대부분 공주가 왕자를 만나 그에게서 구원을 얻고, 사랑도 얻는 스토리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그래서 겨울왕국에 대해 그렇게 큰 애정을 갖고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소녀에겐 왕자가 꼭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중에 메갈리아4라는 페이지가 있다. 원래 메갈리아라는 이름으로 개설되었지만, 남성 혐오적이라는 이유로 계정이 자꾸 정지당하자 메갈리아2, 메갈리아3을 거쳐 메갈리아4라는 이름으로 페이지를 계속 운영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이러한 편파적 조치에 분노하여 메갈리아4는 페이스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여기에 대한 비용부담을 하기 위해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씐 티셔츠를 소셜펀딩의 형태로 판매하게 된다. 이 티셔츠는 애초 목표였던 9,250,000원의 1,448%인 134,017,726원이라는 판매액을 달성했다.
그런데 이 티셔츠를 구매했다고 트위터에 사진을 올린 성우의 목소리가 (녹음을 마친 게임에서) 사용되지 않고 성우가 교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페이가 정상적으로 지급되었다고 하고 사용만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여기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더욱 의아한 것은 그다음에 생긴 일들이다. ‘반 메갈리안’들은 성우 교체를 비판한 웹툰작가들을 압박했고, 비단 웹툰작가뿐만이 아니라 성우 교체를 비판하고 메갈리아를 지지한 유명인들에 대한 압박으로 많은 사과를 받아냈다. 정의당의 경우 문화예술위원회가 성우 교체를 비판하는 논평을 내놓았다가 당원들의 격한 반대에 중앙당이 문화예술위원회의 논평을 철회하는 사건마저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은 내게 계속해서 생각하며 살아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성경을 보면서 예수가 멋지게 보일 때가 많이 있지만 내게 그중 제일은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말을 듣고 “어디 이방인 여자가 누굴 가르치려고!”라며 호통치지 않고 조신하게 ‘네가 그렇게 말하니 옳다’고 말하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이것이 아닐까? 그들은 구원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같은 사람들을 찾을 뿐이다.
거울을 보면서
한국 남자로 거울을 본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부끄러움으로 남아있겠다면 그 부끄러움은 말 그대로 나의 몫이 되어버릴 것이다. 거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의 세계를 공격하는 것은 부끄러움을 더는 일의 시작이 아닐까?


  1. 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2016년 7월 31일)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혐오라는 말 때문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있지만 Hate보다 포괄적으로 여성에 대한 타자화를 부르는 말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본문으로]
  3. 이유진, “성난 여성들의 무기는 책,” 『경향신문』(2016.03.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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