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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모노가따리: I 철혈편」을 일산 메가박스 백석에서 보았습니다. (마스킹은 안 해주더군요.) 니시오 이신(西尾維新)의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입니다. 모노가따리 씨리즈를 모르는 분들도 아마 「연애 써큘레이션」 정도는 한 번쯤 들어보셨겠죠. 유튜브 링크를 걸어놨으니 한번 눌러보세요. 익숙하실 겁니다. 여하튼 모노가따리 씨리즈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은 간단한 구글링으로 찾아보실 수 있고, 씨리즈를 모르는 분들도 글을 읽는 데 별다른 문제는 없게끔 썼습니다. 이 글의 테마 또한 근래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향에서 어느 정도 일반화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암튼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니시오 이신의 작품과, 애니로 제작된 그 영상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어떤 섬뜩함에 관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해보도록 합시다. 「키즈모노가따리」는 ‘상처 이야기’로 번역되는데, 『괴물 이야기』 바로 다음 편입니다. 남한에도 원작 라이트노벨이 번역 출간되어 있죠. 철혈편, 냉혈편, 열혈편의 3부작으로 나눠서 개봉한다고 하는데 1편은 러닝타임이 약 1시간으로 매우 짧고 별다른 서사의 진행도 없습니다. 뭔가 얘기가 시작되려고 하는 순간 끝나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3부작으로 기획했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글을 써서 조금이나마 홍보에 보탬이 되지 않으면 이런 애니는 1-2주일 겨우 극장에 걸려 있다가 내려갈 테고, 앞으로도 수입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겠죠. 그래서 이 글을 쓰고자 한 것입니다.

 

일단 「키즈모노가따리: 철혈편」의 연출은 훌륭합니다. 몇 가지 강렬한 장면도 잘 만들었고요. 공들여 만든 것처럼 보이는 곳도 많습니다. 다만 장편으로 성립할 정도의 수고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마는, 딱히 중요한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티브이판도 마찬가지였지요. 도대체 우리가 뭘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주는 것이 모노가따리(이야기) 씨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연출 의도라고나 할까요. 저는 물론 하도 분량이 많아서 다 보지는 못했는데, 몇 편만 골라 봐도 그 점은 명백합니다. 거기엔 예를 들자면 하네까와 츠바사의 흔들리는 가슴이나 센죠오가하라 히따기의 머리칼, 하찌꾸지 마요이의 어린 신체, 센고꾸 나데꼬의 뱀 머리카락이 있을 뿐입니다. 혹은 별다른 의미도 없이 계속해서 삽입되는 문자열의 집합이라든지 말이죠.



어쨌든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 가운데 하나는, 모노가따리 씨리즈 애니메이션의 핵심이 결국 그 살풍경(殺風景)함에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모든 장면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건 티브이판도 마찬가지고 이번에 개봉한 「키즈모노가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등장인물들은 언제나 배경에 관심이 없지요. 이 씨리즈에 절대로 등장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군중이나 행인 1, 행인 2 같은 사람들입니다. 단지 화자와 청자가 있거나, 혹은 독백 내지 방백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키즈모노가따리」의 초반부 씨퀀스(아래 그림)에서 하네까와 츠바사와 아라라기 코요미가 처음 만나는 동안 화면 바깥에서 자동차 사고 나는 소리가 들리고 그것에 아무도 관심이 없는 채로 부숴진 자동차의 잔해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다른 장면을 아무거나 들어도 됩니다. 「바께모노가따리」의 <마요이 마이마이> 챕터에 등장하는 그 놀이터에는 왜 다른 사람이 아무도 등장하지 않습니까?(위의 그림)



그러니깐 여기에는 엄청나게 히끼꼬모리적인 세계관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하긴 하는데 이게 정말 서로 대화를 하는 건지, 아니면 단지 각자의 말을 늘어놓을 뿐인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사실 모노가따리 세계관의 핵심 설정인 ‘괴이’라는 존재는 달리 말하면 결국 유령 혹은 카미(神)이지요. 이 모든 이야기를, 아라라기 코요미가 귀신들을 만나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들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운 존재들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요. 우리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당연한 전제 혹은 설정을 비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모노가따리 씨리즈 애니메이션은 니시오 이신의 원작 소설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거기엔 뭐가 있습니까? 오직 문자열입니다. 말장난이고,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만연체라고 하기도 뭐한 문장들의 집합으로 모든 이야기가 질질 끌려가면서 책의 분량을 늘려갈 뿐이지요. 그것 자체가 바로 니시오 이신의 천재적인 능력입니다. 예컨대 『너와 나의 일그러진 세계』를 봐주십시오. 막판에 뵤오잉자까 쿠로네꼬와 주인공이 엄청나게 긴 호흡으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몇 페이지에 걸쳐 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혀가 내둘러지죠. 물론 그 대화의 내용 자체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단지 ‘너와 나의 일그러진 세계’의 표상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후꾸시마 료오따가 『신화가 생각한다』에서 지적한 바이기도 합니다.


모노가따리 씨리즈나 『너와 나의 일그러진 세계』, 『소녀불충분』 같은 니시오 이신의 작품들은 외견상 문제발생-해결의 구조를 띄고 있긴 합니다. (사실 소설의 기본인 내적, 외적 갈등 같은 것도 물론 없진 않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괴이를 만난다든가,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든가, 초등학생 여자아이한테 유괴되었다든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죠. 해결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기엔 독자의 추리나 복선에 대한 탐구가 개입할 여지라는 것이 없죠. 왜냐하면 각 작품의 특정한 등장인물만이 모든 사실을 전지전능하게 알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우리는 그 설명과 실마리의 제시를 읽을 뿐이죠. 마치 마이죠오 오오따로오의 『츠꾸모쥬꾸』의 메타-메타 탐정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헛소리 씨리즈 01―잘린머리의 싸이클: 청색 써번트와 헛소리꾼』이 딱 그렇죠. 독자가 아닌 등장인물들만이 모든 것을 이미-항상 알고 있습니다.


아까 그 살풍경함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여기엔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니시오 이신의 모든 이야기는 친구가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죠. 아라라기 코요미가 흔히 ‘아라라기 하렘’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것만 표피적으로 생각하면 일견 사회성이 활발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정말 일반적인 의미에서 ‘친구’라고 생각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여기엔 명백하게 히끼꼬모리 오따꾸를 표상하는 아라라기 코요미의 투명한 욕망과 환상 혹은 허상만이 있을 뿐입니다. 히끼꼬모리 오따꾸에게 친구란 없습니다. 『너와 나의 일그러진 세계』의 등장인물들도 정상적인 교우 관계라고 할 수 없죠. 『소녀불충분』에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초등학생 여아와 무능력한 성인 남성이 나올 뿐입니다. 『잘린머리의 싸이클』도 한 줄로 정리하자면 쏘시오패스들의 이야기라고밖에 달리 표현하기 어렵고요.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니시오 이신의 소설을 읽거나 애니를 볼 때면, 나로서는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의 절대적인 불가능성에 대한 암시로 가득찬 세계가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애니의 연출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씨리즈 특유의 문자열이 화면에 잠깐 등장하고 사라지는 속도를 생각해 보세요. 그건 정말 관객한테 읽으라고 띄우는 자막이 아닙니다. 여기엔 어차피 다 못 읽어도 상관없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도달이라든지 수신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일방적 발송만이 있을 뿐이죠.


혹은 「키즈모노가따리」에서, 팔다리가 잘린 채로 지하철역에서 고통스럽게 뒹굴고 있는 키스샷 아세로라오리온 하트언더블레이드와 아라라기 코요미가 대면하는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 왜 그 넓은 역사(驛舍)엔 둘 빼고 아무도 없죠? 중간에 플랫폼에서 정차하는 전동차에는 왜 아무도 타고 있지 않습니까? 애초에 철저하게 ‘너’와 ‘나’의 닫힌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에 도움을 구할 수가 없고, 딱히 그럴 생각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등장인물의 공통된 사고방식입니다. 운이 좋으면 오시노 메메의 도움을 받아 괴이를 처치하거나 본인의 상태를 낫게 만들 수 있을 뿐이죠. 물론 각자도생입니다. 아무도 아이들을 도와주지 않죠. 결국 니시오 이신과 그 애니의 제작진이 공들여 구축하고 있는 세계는 철저하게 닫혀 있고, 외부로의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런 무섭고 살풍경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섬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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