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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서울시청 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열렸다. 소식을 듣자 하니 올해도 개신교 혐오세력이 등장해 장단을 맞춰준 모양이다. 이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더 이상 그저 비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2016년 남한 사회의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 자라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고, 일정한 힘을 지닌 압력 집단으로 기능한 지 벌써 몇 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3 4월 당시 민주당 김한길, 최원식 의원은 자신들이 대표 발의했던 차별금지법안을 철회했다. ‘법안 발의 이후 기독교 일부 교단을 중심으로 법 제정 반대 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다’는 이유였다. 법안은 “성적지향이란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 개인의 성적인 취향을 말하며 성정체성이란 자신의 성별에 관한 인식 혹은 표현을 말한다”고 정의하면서 이를 이유로 고용 등에서 차별을 주거나 신체적 고통, 수치심, 모욕감 등의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차별’로 규정하고 있었다. 통합진보당(김재연 당시 의원 대표발의)은 법안을 철회하지 않았지만 19대 국회에서 결국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했다.

 

개신교계가 문제 삼은 것은 물론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규정한 대목이었다. 남한이 동성애를 ‘허용’하거나 ‘인정’하면 국민이 타락하고 전통적 가정이 해체될 것이며 에이즈가 확산될 것이라는 논리 구조를 지닌 이들의 주장은 단지 ‘일부’ 교파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차별금지법안 사례에서도 남한 최대 개신교 교파 중 하나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주도적 역할을 했었다. 한기총은 2013 4 22일 민주당이 법안을 철회한 데 대해 “창조의 질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라는 논평을 내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유엔에서도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있다. 201511월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명시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인종,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근거로 한 차별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규정하고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채택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해당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소위 ‘전환치료’ 선전, 헤이트 스피치,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폭력을 포함한, 성소수자에 대한 그 어떤 사회적 낙인과 차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적인 형태로 분명하게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혐오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공적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일정한 요건을 갖춰 발표하다 보면 이것이 여러 대립되는 의견 중 하나로 채택되고 정당한 취급을 받게 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어느 언론이 창조론과 진화론을 대등하게 다루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사람들은 두 이론이 모두 각각의 논리적인 근거가 있고 토론의 장에서 동등하게 대립될 수 있는 주장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사실 창조론은 헛소리에 가깝다. 혐오세력의 헤이트스피치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많은 남한 언론이 LGBT 이슈를 다룰 때마다 빠지는 함정이다. 헤이트스피치를 자꾸 ‘반대 의견’의 하나로 다뤄주다 보면 동조하는 사람들은 힘을 얻는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뭔가 ‘토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2016 4월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우려스러운 현상이 나타났다. 기독자유당이 기호 5번을 받아 비례대표 선거에서 2.63%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대략 627천명이다. 기호 13번 기독민주당도 129천명(0.54%)이 찍었다. 노동당이 0.38%(91천명), 녹색당이 0.76%(182천명)을 득표한 선거였다. 정의당의 7.23%(172만명)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무서운 득표율이다. 물론 기독자유당의 약진이 아주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2012년 제19대 총선 때도 기독자유민주당은 257천명, 1.20% 득표율을 받은 적이 있다. 진보신당은 1.13%(243천명)를 기록했었다.

 

과거 기독자유민주당이나 이번 기독자유당은 참여 인사들의 명단도 그렇거니와 매번 ‘동성애 반대’를 주요 슬로건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일정한 연속성이 있다. 기독자유당은 정책 공약에서 “동성애는 에이즈와 성병을 유발하는 위험한 행동이며, 에이즈 치료비용을 포함한 막대한 사회비용을 초래하는 행동”이라면서 ‘동성애 법제화 반대’를 내걸었다. 이들 혐오세력은 기독자유민주당 때도 ‘수쿠르법, 동성연애법 등 반 복음적 법을 저지한다’는 정책을 내건 바 있다.

 

두 차례 총선의 득표율 결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남한의 진보 정당은 예나 지금이나 지리멸렬한 데 반해 혐오세력은 정치세력화에 성공하며 꾸준히 약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20대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은 비례대표 1석 배출에는 실패했지만, 2% 선을 넘겨 올해부터 국고보조금을 받는다. 남한 정당정치의 영역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까 첫머리에서 더 이상 이들의 활동을 비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했던 이유다.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은 구조적이고 실질적인 차별에 놓여 있다. 2014 1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을 통해 작성한 연구용역보고서 「성적지향·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를 살펴보자. 요약하면, 먼저 보고서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적극적인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수의 성소수자 청소년이 ‘이반 검열’이나 괴롭힘, 징계 등을 겪었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 대한 교사들의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고용 영역에서도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자발적으로 구직을 포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특히 트랜스젠더는 고용 시장에서 차별과 괴롭힘에 특히 취약했다. 대학이나 의료기관에서도 의료인과 직원의 무지, 편견, 혐오에 기반한 차별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군대를 비롯한 국가기관에 의한 차별도 지적됐다.

 

SOGI 법정책연구회가 내놓은 연간보고서 ‘한국 LGBTI 인권현황 2015를 봐도 법적, 제도적 차별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우리 군형법 92조의6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은 201511월 유엔 자유권위원회(UNHRC)에서 폐지 권고를 받았다. 또, 여성가족부는 대전광역시 성평등기본조례의 ‘성소수자’ 항목을 삭제하라고 요청했다.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양성평등기본법’의 취지에 반한다”는 표면적 이유를 댔지만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 민원에 따른 결과였다.

 

남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가 하나 더 있다. 한국갤럽 201412월 여론조사(전국 성인 남녀 1005명 대상)에서는 “동성애자 커플에게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에 대해 35%가 찬성하고 56%가 반대했다. 같은 기관의 20134월 조사가 찬성 25%/반대 67%, 20016월에는 찬성 17%/반대 67%였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 남한에서 동성혼 법제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절반 넘는 국민이 동성결혼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아산정책연구원 조사에서는 2010년 ‘동성애 거부감 없음’이 15.8%, ‘동성결혼 지지’가 16.9%였는데 2014년에는 이것이 각각 23.7%, 28.5%로 나타났다. 특히 2014년 조사에서 20대의 40.4%가 동성혼을 허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20161월 출간된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 성적 지향과 헌법(뿌리와이파리)은 미국에서 ‘혐오의 정치’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혐오라는 감정이 어떻게 법철학의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는지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누스바움의 주장은, ‘역차별’에 대한 반대나 ‘공중도덕’에 대한 환상, 이성애 결혼의 가치가 모욕당할 수 있다는 염려 등이 모두 “혐오를 배경으로 할 때에만 설득력을 얻는 조잡한 주장”(68)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원초적 대상 혐오’와 ‘투사적 혐오’를 구별한다. 우리에게 문제되는 투사적 혐오는 그 오염이 실제 물질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상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예속된 집단에게 혐오스러운 속성을 투사하는 것은 그들을 병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낙인 찍는 흔한 방법”으로서, “투사적 혐오는 규범적 차원에서 비이성적이며 낙인 찍기 및 위계 세우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60)

 

이어 누스바움은 불과 1961년까지만 해도 미국 전역에서 유지되었던 소도미 법이 어떻게 혐오를 통해 사생활 침해 등의 실질적인 차별을 구체화했는지 지적한다. 소도미 법은 항문성교와 오럴 섹스를 비롯해 일반적으로 ‘부자연스럽고 음탕한 행위’,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행위’ 등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법률이다. 이런 구시대적 법률은 1986년에도 미국 연방대법원의 5:4 결정으로 존치됐는데, 저자는 대법관들이 “인간적 상상력의 결핍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으며 “인류애”를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130). 소도미 법은 20036월에야 무효화됐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혐오는 존재하지만 그 양태는 바뀌고 있다. 과거 미국에서 동성애자들의 섹스를 일반 시민들의 보건상 위험과 연관시키는 논리가 득세했던 것처럼,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혐오의 정치’에 따라 반대의견을 내는 것이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다른 주장을 내세우기 때문”(238)이다. 그러나 ‘혐오의 정치’는 어느 정도 모습을 감추고 있으나 성인업소나 게이 찜질방 등에 대한 규제 논의에서는 여전히 건재하다. 저자는 “성적 지향이라는 분야에서 진행 중인 진보가 어느 한 면에서라도 완전해지려면 법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야 한다”(286)고 결론 내린다. 읽기에 크게 어렵지 않은 문장들로 LGBT 차별을 둘러싼 논의와 법적 쟁점, 혐오라는 감정의 구조를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는 책이어서 읽어볼 만하다.

 

남한에서도 동성혼 인정을 위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김조광수, 김승환 게이 커플은 2013년 결혼식을 올리고, 서대문구청의 혼인신고서 불수리처분에 불복하여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지난 5월 25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태종 법원장은 “법적 의미에서 혼인은 ‘남녀 간의 결합’을 가리키는 것”이라며 “동성 간의 결합을 법적 의미의 ‘혼인’으로 인정받을 권리까지 헌법 제10조의 인격권이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곧바로 도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 법원장은 만일 우리 사회가 동성 간의 결합을 법률로 보호한다면 “이를 적절하게 규율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새로운 입법을 통해 새로운 방식에 따라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결국 시대적 상황 등이 다소 변경되기는 했지만 별도의 입법조치가 없는 한 현행법상의 해석론만에 의해 동성 간의 혼인이 허용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를 다투는 신청인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요약하자면 우리 법체계에서 민법 개정 등 입법을 거치지 않고서는 법원의 해석만을 통해 동성혼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직 남한에서 동성혼 법제화는 멀고 험난한 길처럼 보인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2017년 남한 대선에 출마한다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질까? 그는 재임 기간 꾸준히 LGBT 이슈를 제기했으며 호모포비아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유엔 직원들의 동성결혼을 인정하기도 했다. 위에 링크한 감동적인 영상을 보며 눈물 흘리는 시간을 잠시 갖도록 하자. 아직 우리가 반기문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한국어로 이러한 의견을 개진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가 새누리당에서 출마하든 더불어민주당에서 출마하든, 개신교계가 그의 행적을 가만 놔둘 리 없다. 그때가 되면 남한에 돌아와서도 본인의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나로서는 이것이 2017년 대선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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