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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ol의 음악은 철학적이다. 음악이든 영화든 미술 작품이든 어떤 것을 논하건 간에 철학적이다라는 공허한 수사를 넣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며 감상문이나 비평을 읽을 때에도 철학적이라는 말이 나오면 바로 필자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는 나로서도, 보컬리스트 Maynard Keenan을 포함한 네 명의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의 음악에는 철학적이라는 수사를 붙여도 어색함이 없다. 융 심리학을 참고하여 인간 의식의 진화를 노래한 곡이 있는가 하면(46 and 2) 대중문화의 쾌락과 향유를 풍자하는, 마치 크로넨버그 감독의 <비디오드롬>을 음악으로 옮긴 것 같은 곡(StinkfistVicarious) 등 가사 해석만으로 소논문 정도는 쓸 수 있을 법한 곡들이 여러 개 있다. 4년 전에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라는 책이 나왔는데, 『툴로 철학하기』 라는 책부터 나오는 게 맞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질 따름이었다.

 그 중에서 Lateralus라는 곡은 음악적 형식과 가사의 내용이 정확하게 조응하면서도 굉장한 수준의 음악적 완성도를 갖고 있어 Tool 팬들 사이에서 가장 훌륭한 곡으로 꼽힌다. 이 곡이 흥미로운 점은 피보나치 수열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먼저 이 곡의 주요 악절의 박자가 9/8, 8/8, 7/8 순서로 순환하는데, 987은 피보나치 수열의 16번째 수다. 또한 처음으로 verse가 시작되는 부분이 137초 구간인데 1분보다 약 1.617배 크다. 피보나치 수열 하면 빠지지 않고 따라오는 개념인 황금비율 1:1.618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주요 악절이 시작되는 시간이 112초를 넘어가는 부분인데, 피보나치 수열의 첫 네 수들이 0, 1, 1, 2라는 것을 상기하자. 아전인수격 해석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만 이쯤 되면 우연의 일치라고 하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다.

 보컬로 들어가보자. Verse 부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Black, then

white are

all I see

in my infancy

red and yellow then came to be

reaching out to me

lets me see

각 행을 단위로 단어들의 음절 수의 변화를 보면 1, 1, 2, 3, 5, 8, 5, 3 순으로 피보나치 수열 대로 늘었다가 줄어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가사도 마찬가지로 As below so above and beyond I imagine(13) / drawn beyond the lines of reason(8) / push the envelope(5) / watch it bend(3) 피보나치 수열을 자유롭게 그네 탄다. 이는 뒤에 나올 가사 Swing on the spiral에 정확히 조응한다.


 후렴구 가사 내용을 보면 Tool이 그저 형식적으로 유희하고 실험한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Over-thinking, over-analyzing separates my body from my mind.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의 철학에서 중핵이라 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지속이라는 개념이다. 시간을 공간과 같이 단일한 단위로 분할하여 볼 수 있다고 믿을 때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역설을 제논이 보여준 바 있다. 분석analyze이란 바로 분해, 분할의 유의어와 다르지 않다. 생명체를 마치 스냅 사진처럼 시간의 흐름(지속)에서 떼어놓고 보려 하는 순간 남는 건 죽음뿐이다. 하지만 이 노래가 이른바 반지성주의혹은 반합리주의를 주창한다는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 들뢰즈 식으로 말해 사진-이미지(현재 순간의 극소점)에만 함몰되면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에 나오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처럼 매초 모든 것들의 모든 움직임들을 사진적으로 포착해내는 능력 때문에 역설적으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속-이미지만 보게 된다면 마치 마찰력이 전혀 없는 지반 위에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것처럼 실체를 잡지 못하고 끝없이 미끄러질 것이다. 사진-이미지와 그것들의 단절 없는 흐름/생성인 지속-이미지 사이에서 일종의 정박점으로서의 위상을 갖는 것이 운동-이미지이다.

 칸트가 그러했던 것과 유사하게, 베르그손은 실재론과 관념론을 종합-매개하는 이미지-존재론을 제시했다. 베르그손이 정의한 이미지는 관념론에서 표상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더한 것이며, 실재론이 사물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덜한 무엇이다. 사물과 표상 양자 사이를 바로 뇌가 매개한다. 들뢰즈는 뇌는 스크린이다라고 했다. 생명체가 진화하면서 즉각적이고 동시에 이루어지던 자극의 수용과 반응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여 고등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자극의 선별적 수용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요컨대 흔하게 일컬어지는 의식이란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과정에서 걸러내어지고 정제된, 무의식적이고 잠재적인 기억들의 극소 부분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의식은 거대한 시공간적 기억의 바다에 떠 있는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몸이 지나 온 시간과 공간의 계열들 안에서 외부와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총체적으로 반추하는 것이 직관이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면 직관력이 쇠퇴된다(withering my intuition).

 그렇다면 왜 피보나치 수열이어야 했는가? 피보나치 수열 형식은 복잡계 과학(복잡성 이론)을 암시한다. 에드워드 로렌츠의 나비 효과가 보여준 것처럼, 아주 약한 미풍을 더한 것과도 같은 사소한 소수점의 변화가 기상 예측을 혼란 속에 빠뜨려버린다. 로렌츠보다 70년 먼저 초기 조건의 변화의 중요성을 간파한 앙리 푸엥카레의 특이성 이론과 연결하여 보자면 삼라만상이 잠재적인 특이점이며 특이점들이 무수히 중첩되어 있는 상태가 카오스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렇듯 원인과 결과는 중층결정적이며 비선형적이다. 심지어 양자역학에서는 원인과 결과의 위치가 전복된다. 빛의 성질이 입자인지 파동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관측이다. 다소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지성은 크로노스의 시간(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차원의 시간)만을 본다. 따라서 지성적으로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건 반쪽짜리 이해 이상이 될 수 없다. 아이온의 시간(과거-현재-미래로 분절되지 않는 순수사건의 시간)을 직관하는 것이 동반되어야 비로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감성이 필수적일 것이다.

 인지과학의 태동기에는 뇌를 컴퓨터 모델로 분석했는데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2세대를 거쳐 제3세대 연구 국면에 돌입한 지금의 인지과학은 공학과 뇌과학, 신경생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미학을 총망라한다. 특히 인문학과 미학이 또다른 핵심으로 각광받는 까닭은 인간의 인지 능력을 연구하는 데 있어 몸과 감성의 위상이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인간 인식의 선험적 조건을 고찰한, 뇌과학의 몇몇 성취들을 선점했던 학자로서의 칸트의 재평가와 당대에는 열광을 자아냈지만 후에 비실증적인 사변 철학자로서 학계 주변부로 밀려났던 베르그손의 복권 등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특히 스피노자의 감응 이론이 현재 정동 이론(둘 다 영어로 affect)과 더불어 인지과학의 핵심 요체로 급부상했다.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그의 책 『스피노자의 뇌』에서 특정한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어느 부위에 손상을 입은 환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례를 들면서 정서와 느낌이 이성에 필수불가결함을 역설했다. 선천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정상적인 행위 전략을 습득하지 못할 것이라는 건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사실상 모든 사유는 몸으로부터 출발한다. 안과 밖을 구분함으로써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하고 쾌락과 불쾌, 스피노자 식으로 코나투스의 증진 여부에 따라 피아를 식별하는 것이 합리적 사고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감각 활동을 촉진시키는 체육과 예술 교육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어야 할 시기에 진입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수능 점수 올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학부모들이 심지어 학생들도 나서서 음악, 미술, 체육 시간에 자습 시간을 요구하는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1세기에 들면서 점증하던 불안들이 이른바 알파고 시대에 진입하고 인간의 본질을 둘러싼 실존적 공포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러한 공포는 또다른 적자생존의 논리를 재생산하는 동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빼앗길 거라는 불안은 소위 하이퍼-조기교육으로 이어진다. 우리에겐 로봇에게 없는 직관력과 감성 능력이 있다며 자위하는 자들이 동시에 예체능 교육을 등한시하고 인문대학을 통폐합하는 아이러니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한 가운데 서 있다. 인생이란 둘 이상의 특이점들로 분기되는 방정식들을 풀어 나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으며 인간은 수많은 문제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장에 던져진 존재이다. Lateralus라는 노래가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가 맞이하는 문제들의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와 통념이 요구하고 취하기를 종용하는 뻔한 답들, 안전한 길, 선형적인linear 길을 가기보다는 벡터를 바꿔가면서 옆으로lateral, 나선형으로 뻗어나가는(Spiral out, keep going)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는 것이다. 물론 사회가 요구하는 선으로부터 이탈하여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데카당스와 죽음뿐인 이른바 청춘드라마로 귀결될 것이다. 탈영토화 이후의 재영토화, 차이를 수반한 반복이 가능하도록 중심을 다시 잡아주는 틀이 바로 몸일 것이다(still be a human). 쉬운 길, 뻔한 길에서 벗어나 변칙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추구하고(reaching out to embrace the random),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답을 던져 그 결과가 나에게 어떻게 돌아오든 간에 그것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운명애amor fati.


이 영상에서 Lateralus와 피보나치 수열과의 연관성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Tool - Lateralus 가사 전문

Black then white are all I see in my infancy.
red and yellow then came to be, reaching out to me.
lets me see.
As below, so above and beyond, I imagine
drawn beyond the lines of reason.
Push the envelope. Watch it bend.

Over thinking, over analyzing separates the body from the mind.
Withering my intuition, missing opportunities and I must
Feed my will to feel my moment drawing way outside the lines.

Black then white are all I see in my infancy.
red and yellow then came to be, reaching out to me.
lets me see there is so much more
and beckons me to look through to these infinite possibilities.
As below, so above and beyond, I imagine
drawn outside the lines of reason.
Push the envelope. Watch it bend.

Over thinking, over analyzing separates the body from the mind.
Withering my intuition leaving opportunities behind.

Feed my will to feel this moment urging me to cross the line.
Reaching out to embrace the random.
Reaching out to embrace whatever may come.

I embrace my desire to, I embrace my desire to
feel the rhythm, to feel connected
enough to step aside and weep like a widow
to feel inspired, to fathom the power,
to witness the beauty, to bathe in the fountain,
to swing on the spiral, to swing on the spiral,
to swing on the spiral of our divinity and still be a human.

With my feet upon the ground I lose myself
between the sounds and open wide to suck it in.
I feel it move across my skin.
I'm reaching up and reaching out.
I'm reaching for the random or whatever will bewilder me.
Whatever will bewilder me.
And following our will and wind we may just go where no one's been.
We'll ride the spiral to the end and may just go where no one's been.

Spiral out. Keep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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