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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의 여러 음악 사이트에 한 포스터가 일제히 올라왔다. 주황색 배경에 한 남자가 숫자 ‘3’이 적힌 모자를 쓰고 있는 그림이었다. 사진이 공개된 이후 수많은 사람이 게시물에 댓글을 달고 SNS에 글을 올리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이 포스터의 주인공은 몇해 전부터 미국 음악계의 주목을 받은 젊은 뮤지션, 찬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였다. 포스터의 출처는 그의 SNS. 그는 ‘5월 13일’이라는 짧은 글과 함께 포스터를 공개하며 앨범 발매가 임박했음을 전했다.



낯선 존재의 가능성


그는 우리에게 아직 낯선 음악가다.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에 제대로 된 음원 하나 찾기 어렵고, 실제로 그는 정규 앨범을 한 장도 내지 않았다. 모두 믹스테입이었고, 한 장 있는 앨범은 그가 속한 그룹 소셜 익스페리먼트(The Social Experiment)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찬스 더 래퍼는 현 시점 미국 내에서 가장 핫한 뮤지션으로 분류되는 신예다. 독특한 랩 톤과 플로우는 기존의 틀에 살짝 벗어나 있고, 이따금 소화하는 보컬은 멜로디와 랩의 경계에 위치하며 묘한 흥을 끌어낸다. 소셜 익스페리먼트로 낸 곡 “Sunday Candy”에서는 수준급 춤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몸과 성대로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거의 만능에 가깝다.





미국에서 이 정도 재능을 지닌 음악가를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넓은 땅 만큼이나 능력 있는 음악가, 아티스트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 속에서 찬스 더 래퍼가 주목받은 이유는, 그가 데뷔 이래 선보인 움직임의 독창성에 있다. 


찬스 더 래퍼는 기존의 음악 산업 체계와 반대되는 독자 노선을 걸었다. 높은 완성도의 음악을 정식 발매하는 대신 프로모션 없이 인터넷에 노래를 공개했고, 어쭙잖은 앨범 대신 제대로 된 믹스테입을 냈으며, 친구들과 결성한 그룹 소셜 익스페리먼트의 앨범 [Surf]는 애플 뮤직으로 ‘무료’ 공개했다. 비오비(B.o.B), 빅 션(Big Sean), 에리카 바두(Erykah Badu),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 제이콜(J. Cole)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대거 참여한 앨범이었다. 


발매 첫 주 기록한 60만 건의 다운로드 횟수는 음악 팬들이 그에게 걸고 있는 기대에 상응하는 숫자였다. 일련의 활동을 발판삼아 찬스 더 래퍼는 마돈나(Madonna), 칸예 웨스트(Kanye West),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 등 세계적인 가수의 곡에 목소리를 보태기도 했다.





인디펜던트, 기존의 가치에 반기를 들다


찬스 더 래퍼는 인디펜던트로 모든 걸 진행했다. 인디펜던트는 기획사나 음반사와 계약을 맺지 않은 채 활동하는 독립 뮤지션을 뜻한다. 음반 산업이 극도로 발달한 미국. 그곳에서 인디펜던트로 살아남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다. 음악을 통해 성공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대형 음반사는 자본과 전략을 철저하게 적용해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회사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이나 지인들의 도움만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건, 그래서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디펜던트 상태를 유지하거나 소규모 회사 소속만 유지한 채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가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을 기반에 둔 사운드클라우드, 유튜브 등 플랫폼이 뮤지션에게 새로운 통로를 열어준 덕이다. 동시에 리스너들 또한 새로운 음악과 장르, 신예 뮤지션의 곡을 찾아 듣기 훨씬 수월해졌다. 변화하는 환경은 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적응이 어렵지 않은 젊은 뮤지션들에게는 기회나 다름없었다. 더 이상 기존의 채널로 곡을 공개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음악 산업과 음반사에 대한 회의 또한 그들의 변화에 한몫했다. 찬스 더 래퍼는 지난해 10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레이블 계약은 형편없다. 음악가를 고용해 퍼센트를 떼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믿는 이도 있지만, 팬은 뮤지션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만드는 한 곡의 가치는 1달러 그 이상이다.” 찬스 더 래퍼가 걸어온 길을 압축하는 말이며, 인디펜던트의 존재 가치를 논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조류를 이끌고 있기에 찬스 더 래퍼가 새로 내딛는 한발 한발은 적지 않은 영향력을 지닌다. 그의 컴백이 이목을 끄는 이유다.





변화의 다른 이름, 젊은 뮤지션과 인터넷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변화의 물결이 조금씩 일고 있다. 사운드클라우드와 유튜브에는 별다른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구사하는 가수, 래퍼, 프로듀서가 공개한 곡이 가득하다. 이름을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적지 않은 뮤지션이 활동 중이고, 음악성도 수준급이다. 인터넷 매체 힙합엘이(HIPHOPLE)는 올해 초 새로운 뮤직 플랫폼 ‘플라워베드(Flowerbed)’를 런칭하며 우리나라의 인터넷에 숨은 좋은 음악 소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트렌디하면서 독창적이고, 기존의 곡을 영리하게 리믹스한 곡이 많다는 사실은 플라워베드만 살펴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지난해에는 미소(MISO)가 레드불 뮤직 아카데미(Red Bull Music Academy)에 국내 최초로 참가하며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는 작업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작은 뮤지션들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물결. 이 물결은 기성 음악 시장에도 조금씩 영향을 주고 있다. 크러쉬(CRUSH)의 음반이 발매와 동시에 차트 1위를 차지하고, 딘(Dean)이 긴 시간 차트 상단에 이름을 올림과 동시에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거머쥐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한다. 





여전히 아이돌과 K-POP이라는 시장에 깔린 성공의 공식은 단단하지만, 거기서 살짝 빗겨난 셈법의 탄생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두 가수는 각각 아메바 컬쳐(Amoeba Culture)라는 힙합계의 공룡에게, 유니버설(Universal)이라는 배급사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이 물결은 장차 대중음악의 지형에 흡수될 수도 있고, 지형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킬 수도 있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음악 시장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긍정적이다.


기존 시장은 우리에게 거대한 문화 상품을 선사했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돌 중심의 기형적인 음악 구조와 성 상품화에 대한 논란이 존재한다. 양적으로 풍부해졌지만, 질적으로도 그만큼 성장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 부호가 붙는다. 그 부족한 방향성의 대안이 인터넷, 그리고 젊은 세대의 음악에서 피어날 수 있다. 새로운 음악이 탄생한다는 건 고민의 증거이고, 젊은 뮤지션 중심으로 일어난다는 건 가능성의 방증이다. 그들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이들이 음악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자리 잡을 때 우리의 음악은 더 풍성해질 것이다. 찬스 더 래퍼와 그 친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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